건강한 소통이 있는 농촌마을공동체를 꿈꾸다 홍 수 진 | 전남 곡성 하늘나리 마을 사무장
부산에서 인테리어디자인일을 하던 나에게 오래 전부터 가진 여행 습관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낯선 곳들을 그저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것들만 탐닉하던 일은 과히 즐거운 일이었으니까. 그러다가 단지 공간으로서의 도시와 농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연과 벗하여 있는 공간으로서의 농촌과, 생성과 파괴를 반복하며 점점 자연에서는 멀어져 가는 공간으로서의 도시. 단순히 이렇게 시작된 고민이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고, 그들의 삶과 문화, 가치와 철학에까지 미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사는 누구이며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가.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은 어떤 모양인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슬펐다. 좋다. 그럼 진짜 내 삶을 살아 보자. 좀더 가치 있고 건강한 내 삶을 살아 보자. 그러면서 곡성에 터를 잡아 살기 시작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기르며……. “아이구미, 젊은 큰애기가 부산에서 뭣 헌다고 이로코롬 먼 전라도 땅까지 와서 산디아~.”
23가구의 정말 작은 마을. 빈 집 하나 없을 정도로 오랜 세월 늘지도 줄지도 않은 가구 수. 처음 마을로 시집 올 때만 해도 36명 마을 어르신들 모두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이리저리 눈치만 살피셨다. 상식적으로 젊은 사람이 마을에 들어오면 쌍수를 들어 맞이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저렇게 숙덕거리니 보통 사람이 들어와서 살기가 쉽지 않겠구나 싶었다. 우리 부부를 제외하고는 시어머님이 마을에서 가장 젊은 분이셨고 새색시가 마을로 들어온 지도 어언 30여 년 전의 일이었으니 생소한 광경이기도 했을 것 같다. 애초에 무슨 큰 뜻을 품고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이 아닌 탓에 이리저리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자유로이 찾을 수 있었다.
곡성에서도 최고 오지마을로 손꼽히는 이 곳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지만 이 곳에서, 인생의 방향을 새로이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의외로 빨리 왔다. 내가 마을로 들어온 그 시기에 맞춰서 마을의 운명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2004년, 정부지원사업으로 농촌관광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지원을 해 주는 쪽도 지원을 받는 쪽도 뚜렷한 생각 없이 무작정 대세에 휩쓸려 가는 모양이 가히 보기 좋지만은 않았다. 농사를 잘 짓게 하기 위함이라는 명목으로 어마어마한 무상지원금을 뿌리더니, 효과를 보지 못했던지 이제는 그 돈으로 관광을 하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농사만으로 소득을 보장 받을 수 없으니 도시 사람들을 불러들여 맛있는 밥도 해 주고, 농사 체험도 시켜 주고, 짬짬이 생산해 내는 농산물도 팔고…… 그렇게 서로 잘 살게 된다는 결론. 이론상으로는 아주 완벽해 보이는 시나리오지만 실상은 너무도 달라 보였다. 잘못하면 그나마 오순도순 잘 살고 있는 마을에 큰 분란이 일 것 같기도 했다. 다행히 2002년부터 태동하기 시작해 5년 가까이 진행되어 오면서 생긴 나름대로의 노하우들 덕분에 지금은 많이 유해져 보이지만, 변화되는 시책만 쫓아가고 스스로의 대안들을 찾지 않으면 안 돼 보였다. 그 와중에 마을일을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라다크의 무차별적인 파괴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결국 그 곳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길을 함께 고민하고 노력했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글을 읽으며, “농업! 제발 망하게 그냥 내버려 두라”고 외치던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의 글을 읽으며 이 땅의 배우는 젊은이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아직 많이 혼란스럽고 뭐가 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지만, 조용히, 그러면서 아주 천천히 오래도록 쉬지 않고 해야 할 일임을 확신하기에 오늘도 세상의 이야기와 내 속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 월간 이장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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